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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9-04 21:54
정이병, 네가 떠난지 벌써 3년이나 흘렀네.
 글쓴이 : 앨리스
조회 : 517  
여기에.. 내가 남겨도 되는 공간인지 모르겠다.


(사실 네가 있는 어딘가를 찾아 국화꽃이라도 한송이 남겨주고 싶은데... 나 아직 겁이 많나봐.
하고 싶은 얘기가 참 많은데 말이야.)

나 두서 없이 적을게. 이해해줘.



아, 아직도 난 네 얘기를 꺼내기가 마음이 아파.

우리 부대로 온지 1달만에 갑자기 넌 못 올 곳으로 떠났었지...
그때가 여름이긴 했지만 넌 항상 비정상적으로 땀이 많았던 걸로 기억해.
꼭 제대하고 빵집하는 아버지를 따라 제빵사가 되고싶다고 했던 너.
나는 여군이지만 당시 처음으로 생긴, 나보다 늦게 들어온 직속 하급자임에,
너무 궁금하고 내 동생같아 너에게 이런 저런 말을 많이 묻곤 했어.
그럴때마다 너는 꼿꼿한 태도로 관등성명을 대며 '괜찮습니다'와 '알겠습니다'를 그 누구보다 크게 외쳤었어.
선임들이 시키는 모든 것들을 열심히 하고자 했던 너...

한달이란 시간동안 초임하사 - 직속 초임병임에 모든 행동을 거의 함께했는데.
내가 힘이 들면 그렇게 말하라고, 난 그냥 누나라고,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었는데..

그래 뭐, 이미 지난 일인걸... 나 조차도 못미더웠겠지.
난 마음이 너무 아프다. 네가 누구에게나 상담을 받을수 있고 관심병사가 되도,
휴가를 나갈 수 있다는 것도 알려주고..

그 안에서 그 누구도 단 한 명도 네가 믿을 사람이 없었다는게 가슴이 아프다.

지금 제대한지 1년이 지났어.

군대에선, 1달이란 시간동안이나 함께한, 적어도 자신들에게 경례를 해 온 겨우 이병인 친구 하나는 아무것도 아니래.
하하 다들 미친 것 같았어.
그들은 똥밟은 것보다 더 하찮은 마음가짐으로, '우리'의 휴무일을 앗아간 그저 '짜증나는 사건'에 불과했어.

너를 밑에 뒀던 모 소령은 사건 다음날,
다들 모인 자리에 우리 부사관들을 불러놓고 잠시 기다리라 하곤 앞에서 바로 너희 어머니께 전화를 걸더라.
그것도 사망에 관련한 '위로금'에 관해서였던가, 아무튼 돈문제로.
하하 꼭 그때 해야 할 말이었나 싶어.

수화기 너머로 들린 너희 어머니의 목소리에 난, 그 소령에 대한 불쾌함, 더 나아가 지휘관에대한 불신까지 느꼈고.

결과적으로 난 성격 좋은 여간부에서 졸지에 우울증에 걸리고 말았지.
나도 너처럼 누구도 못믿고,
심지어 난 왜그러는지 상담을 해준다고 하는 상관에게도 이 마음을 털어놓지 못했어.
진짜, 그냥 날 매장시킬 것 같았거든.

거기서 그냥 나도 혼자였어.

날 여기서 내보내 달라, 날 두면 자살할 것 같다, 제대시켜 달라고 밖에 얘기하지 못하고...
이유를 묻는 상급자에게 그냥 몸이 안좋다, 우울증이 온 것 같다, 실무 온지 5개월째에 난 제대를 하겠다.고 얘기했고
캐묻는 상사에게 너의 일이 잊히지 않는다.. 네가 자꾸 보인다고 얘기했어
실제로도 네가 자꾸 꿈에 나타났어.
내가 약한건지, 아니면 뭔지 모르겠어.

그렇게...

난 그 곳을 떠났지.

다른 부대에 가도, 이미 낙인찍혀버렸어. 관심병사로.
계속되는 형식적인 상담, 그냥 그렇게 버티니까 등급은 내려가더라.
계속 우울증 치료를 했고, 참 많은 일이 있었어.

나 너 가고 나서, 그렇게 난생 처음으로 아팠어.
우울증도 병이구나 처음 느꼈고
왜 사람이 자살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지 느꼈어.

나 있잖아 그땐 아팠지만 지금은 건강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로 마음 먹었었거든.
너는 빵을 좋아했지, 나는 글쓰는 일을 하던 사람이야.
어떤 계기가 되었는지 여자의 몸으로 군에 입대했고 평생 군인으로 살 수도 있을까 했는데,
사람은 역시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더라.

난 그래, 널 통해 난 누구보다도 더 넓은 마음을 가지게 됐고, 마음의 아픔을 다시 한번 들여다 볼 줄 아는
간부로 나머지 군생활을 마쳤고, 너의 후임으로 이병들이 들어오면 네 생각이 나서 더욱 따뜻하게 대해줬어.

그리고 지금은 대학교생활을 잘 즐기고 있고, 난 지금은 '행복'이 뭔지 알아.

혹시나, 네 부모님이 이 글을 보진 않을까 염려스러워 사실...
왠지 죄송한 마음이라...
그 후 반 년 간이나 내가 그 일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로 상담센터와 눈물의 상담을 했었었거든 ;;

다들 아니라고 하지만 그리고 아닐거라고 이젠 진정했지만
난 아직도 마음 한켠엔 그래.
그렇게 마음이 아프다.

군대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진실이 가려지는 거 너무 싫다.

내가 너의 일기장을 헌병대에 제출하기 위해 복사를 하는 일을 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난 지독했어 그일이.
(그 무서운 네 일기장?메모장?을 보고 많이 울었어;)

그랬다고, 난.

아무튼 네가 내게 많은 영향을 주었고 큰 의미를 주었다는 것을 꼭, 얘기하고 싶었어.

모든걸 다 얘기한 것도 아니고,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중간 설명을 생략해 앞뒤가 안맞는 말도 많은 것 같아.
너에 대한 일 뿐 아니라 군이 '고인물'이라 느낀 게 참 많아.

지금은, 나를 바꿔준 너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털어 놓을 수 있어 후련한 것도 같다.
좋은 데로 갔길 바란다.

정 이병의 명복을 빕니다.

준비 14-09-05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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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임을 위한 엘리스님의  따뜻한 마음이 느켜집니다  먼저떠난 정일병도 열리스님의 진정어린 마음때문에  웃는 순간이있었을것이라 여겨져요

살면서  힘든때가 오면  주저하지 하지말고  이야기 보따리 다풀어놓고  하늘도 한번올려다보고  넖은 들도  바라보며    행복해질  준비를  하시길  바래요  소중한 사람을잃은 아픈 마음은  같은거니........
마음 14-09-13 00:20
답변 삭제  
처음으로 겪는 생소한 환경에서의 불안함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요.
그 군대라는 특수성 때문에 감히 어느 누구에게도 속 마음을 틀어 놓지 못하고 고민하다 자신도 모르게 이승과 저승이 바뀌게 되죠.
우리는 주위 사람들에게 너무도 무신경합니다.
한번의 관심이 사람을 살릴수도 잇는데...
그래도 잊지않고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네요.
못다한 삶, 하늘에서 다 이룰 수 있기를...
위안 14-09-17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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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맘 남길 수 있는 공간이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은 없지요.
가슴속에 꽁꽁 숨기고 있는 것보다 이렇게 틀어 놓고 위안 받는것도 나쁘지 않지요.
가끔 힘겨움이 찾아올때 먼저 간 정이병을 생각하며 마음 다잡고 힘을 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정이병도 분명 기뻐할 것입니다.
이렇게 후임이 떠난걸 마음 아파 도와주는 장교도 있지만,
대부분 자신들의 이익이 앞서 헌신짝 버리듯 등 돌리는 경우들이 대부분이지요.
암튼 명예회복 잘 이루어져 좋은곳에서 편히 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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