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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2-05 18:55
故김동주상병 순직의결.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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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병영인권연대 故김동주상병이 지난 1월 29일 있은 국방부중앙전공상심의에서 순직의결되었습니다.

앞서의 사례와 같이 현충원에 안장요청을 할 것이고, 보훈등록도 할 것입니다.

향후 일정은 정해지는 대로 다시 공지하겠습니다.


-경과-

故상병 김동주

ㅇ 2004년 03월 04일 오전 9시 40분경, 제7보병사단 215야전병원 근무 중 의사사망.
ㅇ 서울중앙지법 국배손판결, 피고(대한민국)책임 70%
ㅇ 2016년 01월 29일 국방부중앙전공상심의서 순직의결.

동주가 사망한 2004년 3월 4일은 사무처장이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구)앞 횡단보도에서 노숙농성을 하던때였습니다.
(2002~2004년까지 세해의 겨울동안 "군의문사진상규명에관한법율"제정을 요구하며 故허원근일병의 아버님, "유가협"의 김학철간사와 함께 노숙을 해가며 농성을 한바 있습니다.

그날 아침 은박 돗자리에서 눈을 떴는데, 드물게도 3월의 서울에 많은 눈이 내려있었습니다.(굉장히 많은 눈이)

마음이 온통 회기중인 국회에 가있었기 때문에 늦은 겨울 내린 눈에 별다른 감정을 느낄수 없었습니다.
(그 한해전 국회활동에서 우여곡절 끝에 한나라당 원내총무였던 홍사덕의원, 민주당 故김근태의원을 불러  국회의장이던 김관용의원이 주선한 면담에서 여야가 합의해 작성하여 유가족들에 의향을 물어 온 "군의문사진상규명법안"의 수정안을 정중히 거절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야당이던 한나리당의 반대로 누더기가 된 이른바 수정법안으로는 실효적인 사망사고조사가 이루어질수 없다는 판단하에 다음 국회가 열리면 보다 진전된 내용으로 새롭게 법안을 만들어 올리기로 결정하고 그 내용을 국회의장께 말씀드리고 인사했던 것입니다, 당시 우리 군의문사유가족들은  노숙농성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유가족들의 이해가 걸린 이 중대했던 법안이 당사자들은 배제된채 만들어지게됩니다, 이후 10여년간  벼라별 괴상망측한 일들이 일어나게됩니다) 

며칠 후 3년간의 겨울집회를 종료하고 춘천국군병원으로 가서 죽은 동주를 보게됩니다.



동주의 사망 원인은 다들 아시는바와 같습니다만,  이른바 군의문사문제는 동주사건 그 이전과 이후로 나뉠만큼 중대한 전환점이 됩니다, 수사부대의 태도와 대처가 그러했고, 우리 연대의 그것도 그러했으며, 수사의 결과와 기록의 진실성도 이전의 그것들과는 확연히 다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사후 보름이 넘게 진행된 수사가 거의 종결되고 나서 국군춘천병원서 장례식을 한뒤, 지금은 운용하고있지 않은 춘천의 1군사 보급대대영현소에 동주를 임시봉안하였습니다. 
이후 동주의 유골은 춘천에서 횡성의 제8봉안소로 이동하게 되고, 열악하다 못해 창고보다도 못한  임시봉안시설에 계속적인 시정을 요구했었습니다, 이에 다시 같은 부대내 병사들의 숙소로 사용하던 옜 건물에 마련된 봉안시설로 이사합니다.
(현재 횡성의 제8봉안소는 이런 과정을거쳐 만들어진 것으로, 강원지역 제1야전군예하 부대들의 영현을 봉안해오던 인제의 서화보급대대 봉안소도 횡성으로 합치게됩니다, 당시 김x환일병을 비롯한 몇몇 접짝  아이들도 사무처장이 함께 이동봉송하였고 태극기도 새것으로 교체하였습니다, 제8봉안소와 관련한 이런 경과들은 정작 당사자인 봉안가족들은 알지도 못합니다)


군의문사진상규명을 위한 과정에서 우리 유가족들과 사무처장의 노력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 지난했던 과정속에서 냉정을 유지하고 진실을 추구하며 죽은자의 권리를 찾기위한 진정한 출발은 故김동주상병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됐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 돌아켜보면 너무도 많은 일들이 있엇습니다, 유가족과 사무처장 모두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가 훈장처럼 주렁주렁 붙혀졌으며 그 후유증은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일들은 사무처장이 그간의 경험을 기술한 책자에 자세히 언급하고 기록해 분명하게 알릴 것입니다.


지금은 그 우스꽝스러운 현충원이란 곳이 거의 누구나 가는 곳이 되었고, 호환마마보다도 무서웠던 이른바 전공상심의라는 과정도 왼만하면 통과되는 절차가 되었지만, 그것을 이루기까지 말로는 다하지 못할 과정들이 있었습니다.
이른바 자살자도 현충원에 갈수있도록 길을 연 "보훈보상법"이 만들어 지기까지 우리 병영인권연대의 가족들은 그 과정에 대부분 참여들을 하셨고 지켜보셨으니 다들 잘 아실것입니다.
(어떤 가족들은 왜 자기 아이가 심사에서 기각이 됐는지, 또는 비해당 결정이 났는지 그 주문의 의미조차도 모릅니다, 그저 막연히 "북빵부새끼덜이 않해줄라고 그런다"고 말합니다, 참으로 통탄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우리 병영인권연대의 가족들은 그러한 사례와 주문의 문구들까지 모두 검토하고 우리 의 개별사안들이 관련법규에 충족되기까지  변화를 촉구하며 기다렸고 합리적으로 대처하였습니다 )


그래서 오늘 최종적으로 결정된 동주의 순직의결이 참으로 자랑스럽고, 한편으로는 괴상스러운 보람도 느낍니다, 동시에 우리 모두가 잊지 않고 새기며 기억해야 할 것들을 다시 쓰게합니다.


ㅇ  "남을 도와보지 않은 사람은 남의 도움을 받을 줄도 모른다"

ㅇ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참지 못하는 저렴한 시민정신"

ㅇ  "침묵하는 권리는 결코 지켜지지 않는다"

이광일 16-02-05 19:15
답변  
그동안의 노고와 기다림 아픔 ᆢ 한길만을 바라보며 달려 오신  정재영 대표님 ᆢ 형님 형수님 수고 하셨습니다 ᆢ 오늘 밤도  두손 모으고 엎드려 감사 기도를 올려야겠습니다ᆢ 햇수로 12년 ᆢ  너무나 아파하시던 형수님 이제 더욱 힘내시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ᆢ 우리 유가족 모든 분들 ᆢ 앞으로 좋은일만 있기를 기원합니다  ᆢ
     
최고관리자 16-02-05 19:44
답변  
감사합니다, 홍준아버님~홍준이 안장하시고 긴장풀리니까 병들이 겹쳐서 왔지요~ㅎㅎㅎㅎㅎㅎ
동주 안장식때 대전서 뵈어요~ㅎㅎㅎㅎㅎ
진맘 16-02-05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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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긴 세월.
이렇다 할 표현도 못하고 앞서 안장되는 유가족들 보면서 가슴앓이도 많았겠지요.
보훈보상대상자법을 만들었지만 5년 이내의 시효를 두면서 느꼈을 충격도 고스란히 옆에서 지켜봤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우리 가족들 힘을 합해 시효도 없애는 뜻깊은 일까지 함께하며 오늘에 이르게 된 것 같습니다.

3월
따뜻한 햇살 아래 제자리 찾을 수 있어 고맙고 감사합니다.
그동안의 마음 고생 잠시 접어두고 오늘 하루  다리 쭉 펴고 편히 주무실 수 있기를...

연이은 남은 가족들도 좋은 소식 들려오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정하누나 16-02-12 22:31
답변  
이상하리만큼 눈이 펑펑 내린 2004년 3월 4일. 어이없게 애통하게 동주를 잃었습니다.
너무나도 그리운 순간이 많았지만 꿈 속에서 몇 번 만나는 걸로 대신 하여야 했습니다.
살아도 사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고모, 고모부가 늘 마음 아팠습니다.
이렇게 12년이 흘렀습니다.  드디어 동주가 편히 묻히는 걸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날.. 동주에 대한 못다한 그리움을 한없이 내뱉어 보려 합니다.

자신과 가족분들을 내던져 놓으시고 하늘나라로 간 수많은 젊은이들을 위해 제 일보다 앞장서시는 사무장님을 뵐 때마다 세상에 어찌 이런 분이 계시나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하였던 것 같습니다. 동주의 순직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사무장님이 그 동안 애써 주셨던 많은 일들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사무장님께 감사함의 큰 절을 올립니다..
     
동원매형 16-02-12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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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처남..글로나마 처음으로 인사해.
고모부님, 고모님 뵈러 가면 처남 사진이 보이는데 얼마나 이뻐하셨을지 상상이 가..
12년이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고모부님, 고모님은 그 때에 멈춰계시지 않을까란 생각도 들어.
이제야 그 시간이 조금씩 흘러 갈 수 있을 것 같네.

고모부님, 고모님께는 나도 자주 찾아뵙고 인사드릴께.
처남의 부모님 두 분..훌륭하고 멋지신 분들이야~
처남이랑은 나중에 꼭 소주한잔 하자!!

-동원매형이-
마음 16-02-14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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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 한명 자기 있을 곳을 잘 찿아 가고 있네요.,
 
우리 가족들 아프지 말고 건강 잘 챙기세요..
호석맘 16-02-15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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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을 위한일에 한결같이 걸어오신  대표님과  포기하지 않고  위태위태 버티어오신 동주 어머님 아버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는 한쪽 어깨의 짐이나마 내려 놓으시고  건강도 함께 챙기시기를 기원합니다
세월 16-02-16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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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직이란 말이 그리 듣고 싶었는데 그세월이 야속하게 느껴질때도 있습니다
지금도 이 순직에 단어를 기다리시는분도 계시죠 그래서 마냥 좋아만 할수없는게
우리 가족의 마음들일꺼라 생각합니다
뒤에 계시는분들도 하루 빨리 이루어졌으면  좋겠네요
깜깜했던 터녈이 조금씩 밝아져 오는듯 하니 남은 가족도 잘될거라 믿습니다
세밀하게 준비해오신 사무장님의 노고가 보이지 않나요?
모든가족 순직 되는날까지 부모님들 건강햐셔요
마음 16-02-23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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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가슴 졸이는 하루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순직되어 현충원 안장의 길에 유가족 모두가 한마음으로 기도심과 더불어
함께 할 수 있는 그날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기뻐도 기뻐할 수 없는 순직의 길
그래도 마음 한켠에 힘든 지팡이 하나 잡을 수 있나 싶은데
또다른 시련이 다가오는 유가족님들 모두모두 힘들지만 서로서로 마음으로라도
위안 삼으면서 한걸 더 발을 내디어 보면 합니다.
심사 16-02-24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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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의 결과를 애타게 갸다리는 가족분들의 처절한 고통 또한 잘 넘기시기를 기원하며
심의장에 서 까지 유족들에게 행하여지는 그들의 횡포에 가슴 미어집니다

나라의 부름에 한치 망설임없이 응한 우리의 아들들은 이 땅의 자식이 아닌지,
자식잃고 통곡하는 유족들은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닌가요?

오늘 저곳에 앉아서 우리 아이를 , 유족을  심사 한다고 하시는 분들은 누구 덕에 그 곳에 있는지
 한번만 생각들 해보시기를....
순직 16-02-25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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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대상자 법이  만들어져서  2012년7월1일

부터시행  하고나서  부터는  자해 사망 자도
좀  가게 되어서  2012년 그해는  2-30명은  순직되었을거라  본다
한심 16-02-28 09:36
답변  
동주네는 군의문사위원에다가 신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2012년 7월1일 날부터 보훈대상자 법이 시행 할때
 
군의문사 위원에서 권고 받은 애들부터 국방부에서 심사하게 되었다
또 시효 때문에 늦었지요.......

할줄 몰라서 여태껏 있었는 줄 알고 있는데
참 말이 그렇게 하고 싶을까  ..
     
정재영 16-03-01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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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주와 양부활, 단 두사람이 당시 군의문사위원회에 조사신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사망의 사인과 원인,동기가 수사를 통해 충분히 밝혀졌기 때문이 첫째이고, 두번째는 위 두명의 아이들 사안과 관련없이 당시 위원회의 인적구성과 조사권한이 진실규명을 위한 실효성 측면에서 매우 부족해 조사의 결과 역시 납득키 어려울 것으로 보았기때문입니다.

이러한 우려는 위원회의 활동시작과 함께 그대로 드러났고, 심지어는 위원회의 일부 조사관들에 의해 조사과정에서 유가족이 두번,세번 학살에 가까운 심적고통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 과정은 주의깊게 당시 정황을 지켜보신 유가족이라면 아실것입니다만, 실제로는 그런 내막을 아는 가족들이 극소수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법을 만들던 당시부터 당사자인 군의문사유가족들은 참여하지 않았거나 방관했었기 때문입니다.

위원회활동과정에서도 있을수 없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각 단체에서 여론을 주도하던 몇몇  회원가족들의 경우는 진실과 관계없이 자기가 원하는 결과를 받아들고 기뻐한 반면, 물색모르는 눈치없는 가족들은 분노를 표출하고 소리를 질렀다는 이유로 확인사살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했던 지저분한 과정의 결과들.....지금 현실이 말해줍니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국방부가 받았다는 윗선의 지시, 이른바 "대선전 100건 순직처리" 방침에 따라 눈치껏 앞에 간 가족들, 자기네가 잘나서 갔다고 자랑은 했어도 그들 누구도 뒤에 있는 아이들의 험난한 갈길을 위해 흙한삽을 떠놓아주지 않았습니다.(보훈급여금은 어떻게 해야 받을수 있느냐는 문의전화는 잘하대요, 국방부도 그때그때 자신들의 이해에 따라 입장과 태도를 밥먹듯 바꾸면서도 부끄러운줄을 몰랐습니다)


우리 병영인권연대는 이러했던 지저분한 세태속에서도 시류의 흐름과 이해의 충돌속에서 죽은 아이들의 권리와 권익을 양보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당당하게 지키고 찾으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명명백백한 진실을 기반으로 정정당당하게 자식의 죽음을 말하는데 주변의 사팔뜨기 얼치기 시선을 피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또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태도이고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백번 말한들 뭐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병영인권연대가족회원여러분들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곤궁한 상황에 처했을때 남의 도움을 받았고, 반대로 남이 그런 상황에 있을때 기꺼이 나서서 내가 받았던 그대로 되돌려주는 원칙을 실천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병영인권연대의 가족들은 그리할 것입니다.
Ty맘 16-02-28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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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군 부모님
안장식때 뵙겟습니다..
보고싶다 16-06-12 16:07
답변  
모두들 고생하셨습니다. 자꾸만 눈물이 흐르는것은...
얼마전 같은 슬픔을 겪은 제 동생네 가족의 일이 자꾸 떠오르네요.
너무나 아파할 것 같아 아직은... 어떻게 지내느냐고...전화도 못해봤습니다.
통곡하며 울고 있을 모습이 자꾸 떠 올라 미칠 것 같습니다.
그만 울고 기운내서 아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정신 차리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것도 동생네 내외에겐 상처가 될것 같네요.
잘 견뎌내시고 좋은 결과 얻으신 분들께 고생하셨다는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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