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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10-08 23:08
구두
 글쓴이 : 관풍
조회 :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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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간 신어 오던 헌 구두를 버렸습니다, 분리수거장 한켠에 헌 옷과 가방 신발 등을 따로 버리는  상자에....

항상 어디를 갈때마다 즐겨 신어왔던 구두였던지라, 아직은 더 신을만 해 보이기도 한지라 마음이 좀 그렇습니다, 아까움도 그렇지만 그런 즉물적인 것과는 다른 뭐....



이 구두는 내 발에 아주 편안하게 잘 맞았습니다, 원래 치수보다 한사이즈 큰 것을 샀던지라 여름에는 땀이 덜 찼고, 겨울에는 조금 두꺼운 양발을 신어도 넉넉해서 좋았더랬지요,  앞쪽 볼이 당시 유행했던 모습과 달리 뭉툭하고 넓어서 인기가 없는 디자인이었지만 대신 오랫동안 신고 있어도 매우 편안하고 모양도 내 마음에는 딱 들어서 항상 기분이 좋았습니다.

저와 함께 십년을 붙어다녔군요.

월드컵이 열렸던 2002년부터 동주가 사망하던 그 해(2004년)까지 3년간 겨울을 여의도 국회 앞 버스정거장 보도블럭 위에서 노숙을 했었습니다,  "군의문사법제정"을 촉구하는 노숙농성이었지요, 당시 허원근일병 아버님과 유가협의 김학철간사와 함께였는데, 우리는 정말이지 단 하루도 현장을 벋어나지 않고 끝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많은 활동가들이 번갈아 가며 함께 했습니다)

새벽에는 전경대원들이 와서 깨워주는데, 출근하는 시민들이 보기 않조좋으니 그만 일어나서 자리를 정돈하라는 뜻이었지요, 사실 깨우지 않아도 잠이 들어있는 적이 별로 없엇습니다,  여의도가 어찌나 겨울바람이 매섭고 찬 보도블럭 바닥이 얼음덩이 같은지 등뼈 마디마디를 바늘로 후벼 파는 것처럼 시리다 못해 아파서 잠을 잘수가 없었던게지요.(이제 그때처럼은 다시 하지 못합니다, 건강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그렇게 하는 것의 필요성을 당시처럼 절박하게 스스로 느끼지 못하겠기때문입니다...)

오그라든 몸을 추스려 어찌해서 아침을 먹고 나면 국회의 몇몇 출입문을 할당해 일인시위를 하며 출근하는 의원들에게 넓죽 인사를 하는 것이 보통인데, 그러다가도 우리가 제출한 법안이 여야 합의나 혹은 이전토의되는 과정이 반복되기라도 하면 급하게 옷을 갈아 입고 국회로 들어가야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농성장에는 노숙때 입는 두툼한 겨울돕바와 국회에 들어갈때 입는 양복이 따로 준비돼 있었지요, 지원을 나온 활동가들이 보면 갸우뚱할때도 있었습니다, 어저께 보았을때는 영락없는 거지꼴이었는데,  어느날에는 말끔한 정장을 하고있으니  그렇게도 보였겠지요.

당시 국회 출입문에서 피켓을 메고 종일 서있다가  의회로 가는 일정이 잡히면 신발도 갈아신어야 했는데, 평소에 너무 춥다보니 모양이나 품질은 그만두고 무조건 조금이라도 덜 발이 시려운 것이 최고의 신발이었습니다,  저는 영등포시장에서 구입한 산업용 안전화를 신었는데 그것도 값이 싸서 좋은점을 빼면 두껍고 무겁기만 하지 별 소용이 없더군요, 결국 나중에는 시골에서 많이 신는 털고무신으로 바꾸었지요.
아무튼, 의회에 가려고 신발을 바꾸어 신을때마다 항상 고역이었습니다,  신던 구두가 발보다 작은데다가  겨울이다 보니 오그라들어서 더욱 불편했고, 종종거리며 빠르게  이동해야 하니 발이 아프기도 했고, 게다가 발까지 엄청 시려웠기때문이었습니다.



세해 겨울 내내 새 구두로 바꾸어 신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지났습니다.(실은 작고 불편했던  구두였지만 아직 새것이었던지라 버리지를 못햇던 탓이지요, 2002년에 애 엄마가 외국으로 가면서 사준 새 구두가  있었지만 포장된채로 방 한켠에서 몇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엇습니다)

2004년 그 해 우리가 염원했던, "군의문진상규명을위한특별법"이 마침내 통과되었습니다, 자그만치 세해 겨울을 노숙하며 등골을 후벼파는 듯한 고통과 싸우며 얻어낸 결과였습니다, 마지막 농성을 마치고 해산하던 날 간 곳은 춘천의 사망사고현장이었습니다.(쌍용부대 예하사단)



일주일쯤 후 집으로 돌아와서 방 한켠에 놓여져잇었던 새 구두를 꺼냈습니다, 사실 전방의 사망사고 현장을 다니며 구두를 신을 일이 별로 없었던지라 그냥 작고 불편하지만 아직은 멀쩡했던  헌 구두를 더 신을지도 생각했었지요.

그때 꺼내어 새로 바꾸어 신은 구두가 바로 오늘 버린 이 구두입니다, 이 구두는 정말이지 너무 마음에 들었엇어요, 모양도 딱히 흠잡을데 없을 만큼 적당히 멋스러웠고, 무엇보다도 편했으니까요, 언젠가 아버지께 생신선물로 구두를 사드린 적이 잇었는데 제 것과 비슷한 모양이었습니다, 포장을 풀어본 아버지께서 그러시더군요, "구두는 앞 코가 적당히 뾰족하게 만들어져야 모양새도 나고 그런겨"라고.

부자지간이지만 선호하는 구두 스타일은 아주 다르다는 것을 그때 알았네요.

아무튼, 오랫동안 나와 한몸이 되어 어디든 같이 다니고, 언제나 편안하고 활동적인 걸음걸음 함께 해준 헌 구두를 버리거나니 마음이 좀 그렇습니다.
사실 겉은 아직도 새것과 다름 없고 뒷굽도 작년에 새로 갈아서 걸을때도 편안하거든요, 십년가까이 신다보니 구두 안쪽 보이지 않는 부분에 가죽이 다 헤져서그렇지 멀쩡해보입니다.



좀 전에 수거함쪽에 다시 내려가보니 누군가가 벌서 가져갔는지 보이지 않더군요, 십년간 매일 보아오던 구두가 갑자기 보이질 않으니 조금 헤졌다고 버린 것이 후회가 됩니다, 구두가 원망할 것같습니다.





언제나  무엇인가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을 느끼며 사색에 잠겼다가도  항상 비슷한 생각에 소스라치며 정신을 차리게됩니다.


"헤진 신발을 버리는 것도 서운한데,  이십년 키운 새끼 죽어 못보는 것은 어떠할지...."


신발은 마음에 드는 것을 다시 살수 있지만,  죽은 애새끼는  다시 못보지요....


우리 아이들의 재조사를 담당하고 계신 조사관 여러분들도 저와 우리 유가족들과 같은 부모이니, 그 마음도 역시 같으리라 믿고싶습니다.




나중에 만나도 미안하지 않도록.....



버리는 구두한테도 미안한데, 죽여 보낸 아이들한테는 어떠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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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구두 12-10-09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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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시기를 함께 한 나보다 나은 구두네요.
아들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뭔가는 이루어 놓아야 하는데 자꾸만 나약해져 가는 내 자신을 일깨워 주려는지 계속 악몽에 시달립니다.
잠 잘 때가 가장 좋았는데 이제 두려워지네요.
이 고통은 언제쯤 끝이날지...
우리의 소망...꼭 이루어지게 해 주소서.
마음 12-10-09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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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싶어도 버릴수 없는 마음,
그동안 같이 해온 모든 것들에  정과 미움이
아침 햇살처럼 여기저기 비추어  버릴 수 없었던 그 마음에,,

뭔지 모를 아지랑이 하나 피어나 주면 버리지 않을 수 있을라나,,
그 어떤 심경의 변화라도 계신것인지, 아님 가고자 하는 길에
또 무엇인가가 걸림돌이 되시는지?

모두가 힘든시기, 힘든마음, 힘든 발걸음에 
그동안 같이한 동지를 버린 그 마음......

살아 있는 것만이 자식인 것은 아닌 듯 합니다.
hjfd 12-10-09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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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애잔합니다 ...
눈에 많이 익은 구두 ......

그동안 고생하셨던 처장님 마음도 ........

그저 짠하고 아픕니다 ....
관풍정 12-10-10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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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중아버님, 그러고보니 이 구두는 홍준이 사고때도 함께했었네요, 수도병원과 5사단을 왔다갔다하던...ㅠㅠ
칼바람 12-10-10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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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정이 든  구두 네요 ....
여의도의  칼 바람이  얼마나 쌘지  덜 덜  떨면서  하루 하루 보냈죠 ....

저녁에는  한나라당 당사  담 밑에다  천막을  처놓고  거기서 떨면서 밥해먹고 바닥은 완전히 얼음짝이고....

국회에  한번 들어 갈라면 그때는  정말 까다로왔어요 ...

너무 너무 정이 든  구두    우리 유가족을 위해  사무처장님  너무너무  고생 많이 하였습니다...

그때 생각 하면  가슴이 벌 벌 떨이고  멍 하네요 ,,
정재영 12-10-12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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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정말 그랫지요~^^~정말 추웠습니다, 그대 생각하면 지금도 등짝이 시려워요~^^~
마음 12-10-17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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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수많은 시간들과 밤하늘의 별을 이불삼아
싸워오신 긴긴시간앞에,,, 무력해지는 가족들까지
일으켜 세우면서 걸어온 숱한 세월앞에,,,

조금씩이라도 변해가는 현실앞에 무너지지 않는
그 곧은 심지가 있었기에,,, 
오늘 이렇게 여기에서 작고 까만 글자 몇개를 올리 수 있네요,,,

누구나 할 수 없는 그 힘든 과정의 세월을 이겨오신것처럼
남은 시간도 우리들의 시간에 맞추어 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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